문헌록 전자족보(대동보) > 문헌록
           
1. 문헌 목록 〉17. 17世 〉2. <요재공>석호처사공휘석동묘갈명(石湖處士公諱錫東墓碣銘)
1. 문헌 목록 〉17. 17世 〉4. <부정공>승지공휘석부전(承旨公諱碩溥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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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요재공>삼호정제영기(三湖亭題詠記)
三湖亭題詠記 記一 亭以湖名焉者以其亭之臨於湖上也湖以三名焉者以其湖之管於三人也湖之南牟之陽有一帶長川逶邐於兩峯之間而淪漣成湖者殆過十數里而即昔皇華聿由之舘路也以其矗累之石鱗鱗相藉隄其噴放之水涵泓渟瀋有若天造者然其深也方舟通焉其利也魚鱉生焉行者履巉巖而則厲則揭之勞農者灌稻田而有如茨如粱之美此湖之名曰德曰仁豈非指其性之有包而然耶抑亦指其利之有及而然歟在余先世嘉其知而遂舍於是湖不數里之許而顧主張者無故余與昆季三人遂構小亭於湖之上而家伯則取水之名而號曰仁湖於余則取水之性而自號曰德湖於弟則取水之磯而號曰石號然則扁以三湖者豈非得於水管於人耶亭雖葺闒幸我三人相處湛樂花柳佳辰聊與嘯詠自適風月良夜相與逍遙忘歸有時乎乘興散歩於湖之湄有時乎披襟納凉於亭之上顧余自號小德川流者尤有愧矣然而花樹之會稱員外之古家季園之宴敍靑蓮之樂事是皆敦睦友愛致而斯亭之一觴一詠亦豈多讓於前人哉噫吾以遯世之殘裔絶意名利放跡山水自敍其略干顚末以備後日登斯亭者之觀覽云爾 辛未三月下澣 德湖翁 記 二 牟陽士人趙君允模與其從翰模過余於西原山中而言曰吾先祖仁湖德湖石湖三兄弟公甞隱居求志不以利自營惟山水是娯就所居縣之西長川之上構小亭扁之以三湖盖因自號而名之也兄弟相處湛樂瀜洩人莫不豔稱後百年餘亭廢只有遺址久爲諸孫之齎咨興歎而力絀不能擧乃於今年春合謀重建軒檻窓楹奐然復新烟波上下可以方舟草樹陰翳禽鳥相樂登斯亭也恍然若親承當日之謦咳而不肖等相吿以勿替今日之事願吾子賜數行以記之余顧非其人而第有一言爲諸君奉復者詩云維桑與榟必恭敬止以其爲瞻依之鄉故雖草樹之微尚加恭敬之心况其休息之所起居之室奚但爲桑榟之比哉雖然平泉之石卒不爲李德裕子孫之所有則其肯構之難有如是也今諸君既守之矣又能嗣而葺之其必熟講乎繼述之義而凡爲三湖公之孫者無徒以葆護一小亭作爲能事必以三湖公友于之心爲心則此所謂無傷厥心而其爲繼述之事今諸君之勉之者其果及於此乎否吾將膏吾車而抹吾馬携諸君一登於斯以觀其形勝因以連理之樹樹之於亭下也時 西紀一八六四年甲子中秋日 德殷 宋近洙 記 三 三湖之名非湖之有三也湖以號者三也一湖之得三號即仁也德也石也湖能利澤及物而無偏無私非其仁耶湖能不擇細流而含垢藏汙非其德耶湖爲累石堤防不轉不泐能就其深者石之使然也在昔公三人隱居求道於斯而伯取湖之功而曰仁焉仲取湖之量而曰德焉季取湖之質而曰石焉構小亭於湖之上而扁之以三湖月夕花朝遵芳渚而逍遙酒榼詩둕叙彝倫而湛樂人無塵之累湖無渣滓之穢則湖不可無是人也亭名不可無是湖也序以記其遐趣詩以述其孔懷而歲久亭頹惟玆湖與號在焉三湖公之雲仍殫誠竭力鳩財營建因其舊址廣而新之其裔良模請余記並詩固辭不獲遂綴蕪辭叙其略干而此湖盡得湖南之美斯亭亦得此湖之美三湖之賢又兼有湖與亭之美而愧余文不足以揚其善詩不足以盡其美願諸君繼承其仁之美德之美如石之彌堅則豈不猗歟美哉 崇禎紀元後一八六五年乙丑仲夏下澣 知縣 成喬修 記 一 정자를 湖로 이름한 것은 정자가 湖上에 臨해서요 三으로 이름한 것은 湖가 세 사람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湖南의 牟陽 남쪽에 한 줄기 긴 강이 있어 두 봉우리 사이를 감돌아 잔잔하게 호수를 이룬 것이 거의 十數里에 뻗치니 옛 勅使가 經由하는 驛路였다. 우뚝한 돌로 돌머리가 내보이게 서로 쌓아 奔放한 물을 막아 물이 깊이 괴어 하늘이 만든 것 같으니 그 깊이는 方舟가 通하고 그 이로움은 魚鱉이 산다. 나그네는 쭈삣한 바위를 밟고 가서 걷어 올리고 걸매고 하는 수고로움이 없고 농사꾼은 논에 물을 대어 납가새 같고 기장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이 호수의 이름을 德이라 하고 仁이라 한 것이 어찌 그 性의 内包함을 가리켜 그러함인가? 아니면 그 이로움의 미치는 바를 가리켜 그러함인가? 나의 先世에 그 땅을 아름다이 여겨 이에 이 호수에서 두어 마장도 못되는 곳에 집을 지었고 내 형제와 함께 三人이 이에 작은 정자를 호수 위에 얽어 家伯은 물의 이름을 取하여 仁湖라 號를 하고 나는 물의 性을 取하여 스스로 德湖라 號를 하고 아우는 물을 갓을 取하여 石湖라 號를 했으니 그렇다면 三으로 扁額한 것이 어찌 물에서 얻고 사람에 관련됨이 아니겠는가? 정자는 비록 보잘 것 없으나 다행히 우리 三人이 서로 거처하며 마음껏 즐기고 花柳 좋은 때면 힘입어 더불어서 휘파람 불고 풍월 읊으며 自適하고 바람과 달 좋은 밤이면 서로 더불어 逍遙하여 돌아갈 줄 몰랐다. 때로 興이 나면 호수가를 散歩하고 때론 옷깃을 헤치고 정자 위에서 서늘함을 맞아들이니 돌아보건대 내 取한 바 小德川이라 한 것이 더욱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러나 花樹의 모임은 杜員外의 옛집을 일컫고 桃李園의 잔치는 李白의 즐거운 일을 폈으니 이가 모두 敦睦하고 友愛의 所致요 이 정자에서 한 번 술잔 나누고 한 번 풍월 읊음 또한 어찌 이전 사람에게 양보만 하겠는가? 슬프다 내 遯世한 분의 후예로 名利에의 뜻을 끊고 山水間에 優遊하면서 스스로 略干 顚末을 叙述하여 後日이 정자에 오르는 이의 觀覽에 제공한다. 辛未三月下澣 덕호(德湖)옹 記 二 牟陽 士人 趙君 允模가 그의 從氏 翰模와 함께 西原山中으로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우리 先祖 仁湖 德湖 石湖 三兄弟公이 일찍이 隱居하여 뜻을 求하고 名利로 自營하지 아니하며 오직 山水를 즐겨 사는 바 縣西 긴 강 위에 작은 정자를 얽어 三湖라 扁額하니 自護로 因해 이름한 것이다. 형제분이 서로 거처하며 원만하게 즐기니 사람들이 부러워 칭송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 뒤 百餘年에 정자가 廢頹되고 다만 遺址만 남아 있을세 오래도록 諸孫들의 한탄하는 바 되었으나 힘이 모자라 일을 일으킬 수 없었는데 今年 봄 謀事할 것을 合議하여 重建하고 보니 처마와 난간 창과 기둥이 奂然히 다시 새로와 아지랑이 낀 물결 위아래에 方舟를 띄울 만하고 풀과 나무 그늘 속에서 새들이 서로 즐기니 이 정자에 오름에 怳然히 몸소 當日의 인기척을 듣는 것 같아 不肖等이 오늘의 일에 衰退하지 말기로 서로 경계를 했으니 원컨대 그대는 두어 줄 글로 기록해 달라 하는데 내 돌아보건대 그럴만한 인물이 못 되나 한 말씀 諸君을 위해 받들어 反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詩傳에 뽕나무와 梓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 했으니 우러러 의지하는 고향이기 때문에 비록 하찮은 풀이나 나무도 오히려 공경하는 마음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거든 하물며 休息했던 곳이오 起居했던 집이거니 어찌 다만 뽕나무나 梓나무에 비기겠는가? 비록 그러나 平泉의 돌도 마침내 李德裕 자손들의 所有가 못 되었은즉(唐나라 李德裕가 平泉에 別莊을 짓고 平泉樹石記를 지었다) 조상을 위해 집을 짓기가 어려운 것이 이와 같은데 오늘날 諸君이 이미 지키고 또 계승해서 修葺을 했으니 반드시 繼述의 뜻을 익히 講했을 것이나 무릇 三湖公의 후손 된 자는 한같 한 작은 정자를 보호하는 데 能事를 삼지 말고 반드시 三湖公의 友愛하던 마음으로 마음을 삼을 것인즉 이를 이른바 그 마음을 상하게 않는다는 것이고 繼述하는 일이 될 터인데 지금 諸君의 힘쓰는 것이 과연 이에 미치는지? 내 장차 내 수레에 기름칠하고 내 말에 깔 먹여 諸君을 同伴하고 거기 한번 올라가서 形勝을 살펴보고 因해 連理樹(두 나무의 결이 맞붙은 나무 和睦을 상징)를 정자 아래에 심으리라. 西紀 一九六四年 갑자 중추일 德殷 宋近洙 記 三 三으로 湖名을 한 것은 湖가 셋이 있어서가 아니고 湖로 號를 한 者가 셋이어서이다. 湖 하나로 號 셋을 얻었으니 곧 仁이고 德이고 石이다. 湖가 能히 利澤을 萬物에 끼쳐 주면서도 無偏 無私하니 仁이 아니겠는가? 湖가 能히 작은 시내를 가리지 아니하여 때죽을 머금고 더러움을 간직하니 德이 아니겠는가? 號는 돌로 堤防을 쌓아 굴으지도 아니하고 갈라지지도 아니하여 能히 깊이를 이룬 것은 돌이 그렇게 하게 함이라. 예전 趙公 兄弟 三人이 여기 隱居하여 道를 求하면서 伯氏는 湖의 功을 取하여 仁이라 하고 仲氏는 湖의 度量을 取하여 德이라 하고 季氏는 湖의 質을 取하여 石이라 하고서 작은 정자를 湖의 위에 지어 三湖라 扁額하고는 月夕花朝에 꽃다운 물가를 따라 逍遙하고 술통과 詩 등으로 彝倫을 펴고 마음껏 즐기니 사람은 티끌로 더럽힘이 없고 湖는 찌꺼기로 더럽힘이 없는즉 湖는 이 분들이 없어서 안 되겠고 亭은 이 湖가 없어서 안 되겠더라. 志趣를 기록하여 序를 하고 큰 회포를 서술하여 詩를 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정자는 퇴폐되고 오직 湖와 號가 남아 있더니 三湖公의 雲仍이 誠과 힘을 다하여 재물을 모아 營建하여 因해 그 옛터에 넓히고 새롭게 하고서 그의 裔孫 良模가 내게 記와 詩를 請할세 固辭하다 얻지 못하여 이에 蕪辭를 얽어 略干 서술하거니와 이 湖가 湖南의 아름다움을 다 얻었고 이 亭이 이 號의 아름다움을 다 얻었으며 三湖의 賢에다 또 湖와 亭의 아름다움을 兼했으니 내 글이 足히 그분들의 善을 들치지 못하고 詩가 足히 그 아름다움을 다하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원컨대 諸君은 그분들의 仁의 아름다움과 德의 아름다움을 계승하여 돌처럼 더욱 굳게 할 것 같으면 어찌 오! 아름답지 않으리. 숭정기원후 一八六五年 을축 중하하한 지현 성교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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